제목 | 엔지니어링 업계, 정말 위기인가..... 아놀드 토인비의 관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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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재성 |
첨부파일 | 엔지니어링 업계의 위기.hwp |
.................................................................. 엔지니어링데일리 기사자료 요약. 김 재 성(지반터널본부) 엔지니어링을 비롯한 건설업계 전반이 위기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인 경기둔화와 인프라에 대한 인식변화 또는 복지우선정책으로 인한 예산삭감 등 많은 근거를 제시하면서 비관적 전망을 확산시킨다. 이름 있는 연구소나 정부기관에서 생산된 그래프나 구체적인 통계수치로 전망할 수 있는 미래 역시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정말 엔지니어링 업계는 이들의 말대로 위기에 빠져 있으며 사양사업이 되어가는 중일까. 천만에,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재정압박을 이기지 못해 도산하는 업체를 열거하면서 ‘이래도 위기가 아니라구’ 하며 코웃음을 칠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면 엔지니어링 업계의 위기는 상당히 과장되어 있으며 대부분 타당하지도 않다. 경기는 사인(sin)곡선을 그리며 순환하니 불경기 다음에 호경기가 오지 않겠는가 하는 일반적인 말을 하자는 게 아니다. 위기는 기회라거나 환경은 변화와 적응을 요구한다는 구호성 멘트를 날리려는 것도 물론 아니다. 우선 위기라는 말부터 생각해보자. 모든 사업은 항상 위기를 내포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이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다시 말해 항상 위기에 극복해 나가는 것이 사업이라면 현재라는 시점을 짚어 특별히 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 있는 진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위기의 근원으로 꼽는 환경 변화 역시 의심스럽다. 사업 환경이나 국제적인 여건 역시 지속적으로 변화하므로 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지 현재의 업계 현황을 특정하는 근거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본다면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은 전후부터 지속되어 온 국토개발의 수혜로 건설업계가 누려온 호황이 아닐까. 인구증가와 핵가족화로 무조건 분양을 담보할 수 있던 주택 경기, 대도시와 주변 위성도시의 개발로 끊임없이 지속되던 도시기반시설의 확충, 산업화의 과정에서 저임금으로 우수한 인력을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던 유리한 사업구조... 이러한 건설산업 환경에 우리가 너무 익숙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나 또한 심정적으로는 그들의 생각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합리적인 분석이나 이성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와 업계 동향에 눈을 감고 얘기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지금이 위기인지 아닌지를 두고 벌이는 설전은 그 자체만 가지고 보면 별 소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재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관점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성을 잡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놀드 토인비의 생각을 들어보자. 환경변화와 문명의 적응이라는 관점에서 26개 문명을 분석한 ‘역사의 연구’를 보면 그가 꼭 지금의 우리나라 엔지니어링 업계를 염두에 두고 말하는 듯하다. 그는 인류 문명이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다고 말한다. 이 관점은 26개 문명을 분석하는 기본적인 매카니즘인데 특히 이집트와 수메르 문명을 보면 그가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랜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던 몇 백만 년 동안 아프리카와 메소포타미아 유역은 생명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초원지대였다. 나무에서는 가지가 휠 정도로 열매가 열렸으며 사냥거리도 충분해서 수렵과 채취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우호적인 자연환경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가던 1만 년 전부터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빙하지역이 좀 더 위쪽으로 물러나자 얼어붙었던 유럽은 초원지대로 바뀌면서 생명의 활기로 가득 차게 되었다. 반면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건조지대로 들어서 땅의 지력은 점차 고갈되어 갔다. 숲이 사라지자 짐승들은 유럽의 초원지대로 하나 둘 떠나갔다. 이곳에서 살던 인간에게는 세 가지 선택이 주어졌다. 하나는 새로운 정주환경을 찾아 유럽의 초원지대로 이주하는 것이고 하나는 그냥 그 자리에 남아 버텨보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패러다임을 바꾸고 삶의 방식과 생산구조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었다.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하고 유럽의 초원지대로 이주한 인간들은 기존에 살던 방법대로 삶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인구가 점차 늘어나면서 사냥거리가 부족해지긴 했지만 양이나 라마를 길들이고 수렵을 병행하면서 유목민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이들은 수렵과 유목에 필요한 기술을 발전시켜 점차 툰트라 지역까지 인간의 생존영역을 확장하면서 아시아와 아메리카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이들은 삶을 지속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새로운 문명을 꽃피울 여력은 가지지 못했다. 두 번째 환경 변화라는 도전에 응하지 않고 그냥 버티기로 한 인간들은 어찌 되었을까. 예상한 대로 이들은 가장 혹독한 시련을 받았다. 지력이 부족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구를 줄이고 먹는 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근근이 삶을 이어나갔지만 수적인 열세로 인해 외부침략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세 번째, 건조화라는 환경재앙에 맞서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원시적인 농경을 개량하고 둑과 관개수로를 만들어 부족한 물을 확보하면서 생존기술을 개발해 나갔다. 열악해진 자연환경의 도전에 두뇌와 기술을 무기로 응전한 것이다. 바로 이들이 수메르 그리고 이집트 문명을 창조해 낸 인간들이다. 지금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건설환경 변화 그리고 이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업계의 대응전략을 토인비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첫째, 점차 건조지대로 변해가는 중동지역을 벗어나 유럽으로 옮겨간 인간은 새로운 사업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사업을 개척하는 일로 비유된다. 현저히 감소된 국내 사업물량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중동 남미 아프리카로 새로운 파이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둘째는 지력이 떨어진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을 줄인 인간들처럼 구조조정을 통해 대처하는 방법이다. 줄어든 국내 사업물량으로 인해 기대할 수 있는 일감이 줄어든 만큼 씀씀이와 직원을 줄이고 임금을 삭감해서 버텨보는 것이다. 셋째는 농업혁명을 통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한 수메르와 이집트인들처럼 틈새시장 진입 사업다각화 등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할 수 있는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불황에 대처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토인비가 살아 있다면 아마도 세 번째 방법을 선택하라고 조언할 듯싶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답이 아니다. 토인비의 비유는 엔지니어링 업계를 비추어 볼 수 있는 명징한 거울이긴 하지만 우리가 지금 취해야할 선택이 원시적인 공간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셋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세 가지 방법, 다시 말해 구조 조정을 통한 효율적인 업무환경 개선, 해외진출을 통한 새로운 사업물량 확보,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성장동력 창출을 동시에 수행해야만 한다. 세계대전 이후 사회기반시설 재건으로 급성장을 계속하다 점차 사업물량 감소로 우리나라 엔지니어링 업계와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던 유럽의 예를 살펴보자. 형식이나 규모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전후의 유럽 엔지니어링 역시 지속적인 성장가도를 달려 왔고 이러한 추세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전후 복구가 마무리되고 어느 정도 사회기반시설이 갖추어진 1970년대 후반부터 건설산업 전반에 걸친 저성장 기조는 엔지니어링 업계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특히 1976년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폭락과 금융위기 및 석유파동은 유럽 건설경기를 끝이 안보이는 불황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그 여파로 잔뜩 몸집을 불려놓았던 설계회사들은 하나 둘 파산의 위기에 내몰렸고 많은 회사들이 기업합병의 형식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상당수 회사들은 각고의 변화를 통해 불황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이들이 선택한 변화의 과정을 살펴보자. 가장 뚜렷한 변화는 설계(Design)에서 관리(Management)로의 전환이다. 이들은 무형의 설계경험을 특허로 만들어 가치평가가 가능한 유형의 자산으로 전환시켰으며 개별사업 설계에서 범용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개발회사로 변화했다. 그리고 그 기술이 적용되는 현장을 관리하고 기술을 지원하는 CM(Construction Management) 또는 PM(Project Management) 업무를 회사의 주요 수입원으로 만들었다. 한편 회사의 내부구조는 198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을 도입하여 기능 위주로 분화되어 있던 부서 단위를 프로세스별로 재편하고 새로운 사업 환경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구조화하였다. 이러한 변신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유럽의 설계회사로는 프랑스의 VINCI사, 영국의 AMEC사, 스웨덴의 SKANSKA, 독일의 Hochtef, 네덜란드의 FUGRO사 등을 들 수 있다. 회사별로 주력분야가 다르고 관리시스템도 현저한 차이가 있지만 모두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내부 혁신을 통해 현재에 이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최근 유럽 설계회사의 프로젝트 수행방식을 보면 핵심적인 설계는 자사의 원천기술을 활용하고 인건비가 많이 드는 상세설계는 후발 사업국가에 맡기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역시 구조 조정과 프로세스 개선이 잘 융합된 결과로 생각되는데 이렇게 확보한 가격경쟁력이 해외사업 수주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2006년 한국 유럽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설계업계가 유럽장벽을 뚫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부분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국가재건사업과 산업화의 물결로 오랫동안 건설경기의 호황을 누려왔고 그 과정에서 고도의 설계기술과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이렇게 얻은 기술과 경험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할 때가 아닐까. 석유 프랜트 사업을 보자. 2011년 우리나라가 수입한 원유는 9억 27백만 배럴로 물경 110조 원이 넘는다. 이 중 대부분은 국내에서 소비했지만 20% 남짓한 2억 배럴은 가공 수출하였는데 그 돈이 60조원이 넘는다. 이를테면 꽤 수지가 맞는 장사를 한 셈인데 그 배경에 오랫동안 축적된 프랜트 엔지니어링의 경험과 기술이 자리잡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석유화학뿐 아니라 세계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조선 정보통신 자동차 산업 역시 고도로 축적된 엔지니어링의 힘이 아닌가. 건설 엔지니어링이 건국 이래 최악의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는 불평은 이제 그만 하자. 그 말이 아무리 맞다 해도 운다고 젖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지금은 우리가 축적한 경험과 기술력 그리고 뼈를 깍는 변화와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남아메리카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중국이든 유럽이든 박차고 나가야 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덩치가 크거나 힘이 센 종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종이다. |